나는 프로그래머로 일을 시작한 후 4년째 포탈 웹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해왔다. 프로그래머로써 처음 주어진 일부터 해서 지금까지 수행해온 대부분의 일은 기획자라 칭해지는 기획만을 담당하는 사람이 제시한 기획서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기획자는 웹페이지를 파워포인트로 한장 한장 그리고 웹페이지에 들어갈 정보들과 기능들을 매우 추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면 그 추상화를 바탕으로 디자이너는 구체화된 웹페이지를 만들어내고, 프로그래머는 이 둘을 조합해서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웹 어플리케이션을 완성하게 된다.
기획자에게는 데이타가 천만건이 있건, DB가 3개로 분리되어 있건 그런건 상관이 없다. 그저 ‘참여자순으로 정렬 기능’ 추가 라고 한마디 적으면 자신의 몫은 끝이다. 그 이후에는 개발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불평을 하면 기능이 구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에는 충돌이 있고 게이른 프로그래머가 자신의 기획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이런 웹 기획자는 원래 어떤 존재였을까? 적어도 10년전에는 이런 직종 자체가 없었고, 아마 현재의 웹 기획자의 뿌리가 되는 직종이 몇 가지 있었을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웹기획자의 시초는 생산직의 관리자 또는 기획자가 아니였을까? 그렇다면 반대로 개발자는 생산직 노동자에서 발전한 직종이 된다. 즉, 생산성은 노동집약에 기인하게 되고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생산량도 늘어난다고 믿어지는 것이다. (결코 사실이 아니다!) 기획자가 정한 일정에 맞춰 개발이 완료되도록 강요받고, 개발자는 기획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서포터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개발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작업이다.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현재 웹 기획자들이 대학에서 과연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생각해본다면 이 직종의 모순점을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아마도 담당하게 될 업무와 관련된 전공지식도 필요하겠지만 보통은 웹에 관심이 많은 전공불문의 아무나 웹 기획자가 될 수 있다. (물론 기본적인 지적 능력은 필요하겠지만..) 경영학, 문학, 심리학, 컴퓨터과학, 사회학 등등.. 반면 개발자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프로그래밍 언어와 소프트웨어 공학, 알고리즘 등을 공부하며 몇년간 개발자가 되기 위해 준비한다. (개인적으로 난 영문과 출신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가 과연 진리일까? ‘조엘의 소프트웨어’나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를 읽으면서 미국의 개발문화를 접하게 됐는데, 놀랍게도 미국에는 웹 기획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프로그램 관리자’라는 직책이 이 일을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요구사항을 분석해서 실제 어플리케이션 개발에 필요한 ‘기능 명세’를 작성한다. 이 직책은 보통 상급 개발자가 직종을 바꿔 수행하게 된다. (물론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뛰어난 프로그램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관리자’와 우리나라의 ‘웹 기획자’의 가장 큰 차이는 프로그램 관리자는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자에게 필요한 기능 명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즉, UI 요소는 전문 UI 디자이너에게 일임하게 되고, 구체적은 구현은 프로그래머에게 맡기는 것이다.
한국의 포탈 업체는 개발자에게 기획 능력을 뺏어가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인터넷의 새로운 트랜드는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해간다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가 N:N의 관계로 급속하게 팽창할 수 있는 것도 그 기반이 되는 기술이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 지식이 없는 기획자가 만들어내는 서비스가 과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WEB2.0이 유행하고 있지만 미국 사이트를 모방하는데 그치거나 한국식 WEB2.0 스타트업이 시작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개발자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웹 기획자가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가, 세부적인 기능을 구체화하는 프로그램 관리자, 사용자 분석 담당, UI 담당 등으로 세분화 되고, ‘스토리보드’ 작성법 보다는 기반 기술 학습에 시간을 투자한다면 어떨까. 일정은 개발자가 세부 일정을 잡으면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조절해가면 어떨까. (이때 뺀 기능이 추후 결국 필요가 없는 기능이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
PS) 개발자 입장에서 쓴 글이여서 아마 다분히 편파적으로 보일 수도 이다. 하지만 웹 기획자도 꼭 ‘조엘 온 소프트웨’, ‘웹 표준’ 등의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18 Comments
매우 공감 가는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ps 부분..
정말 이쪽이 발전하면 할수록 기획자들도..흐름을 알아야하는데..그렇지 못한 기획자가 많음에 .. 너무안타깝고
어디처럼 해달라~ 라고 말하는 기획자들이 있어서 더욱더 안타깝습니다.
그렇죠. 저쪽은 이렇게 하니 우리는 다르게 해보자. 이런게 아니고 저기랑 똑같이 해주세요~ 이런건 곤란하죠.
개발자 pm과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겠죠?
개발자 PM이 답은 아닌거 같네요.
뛰어난 개발자가 의사소통능력이나 관리능력을 가지고 있는건 아니니까요.
그보다는 Planner라는 한국 특유의 업종의 재정립이 필요한게 아닐까요??
잘 읽었습니다. 우리회사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엄밀히 말해 웹기획만 하는 기획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발팀이 아닌 팀의 정식 명칭은 Business가 들어가는, 다시 말하면 사업팀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기획과 서비스 운영, 루틴한 통계 처리, 잦은 보고, 마케팅, CS 등 잡다한 일들이 많지요. 서비스를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그 당위성을 보스가 수락하도록 만들기 위한 사업계획 및 유관 팀들과 컨센선스를 형성하기 위한 공유, 보고 등의 절차가 있습니다. 예산을 따는 과정도 복잡하구요.
홍보, 마케팅, 통계 등의 많은 일들을 스탭 부서가 처리하는 것 같아도 그쪽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는 자잘한 많은 가공 처리들이 필요하고, 실제로 큰 건이 아니면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기획자라는 생각으로 일을 해본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업팀의 일원으로, 사업자로서 일을 했답니다.
하지만 사업자 역시 최근 나타나는 변화들에 대해 책을 읽고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덧, 다만 웹기획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파워포인트 몇 장을 던지고 그대로 구현되는 것으로 무심하게 뒤돌아서는 것 같은 표현은 좀 과장이 아닐까 싶어 적어본 것입니다. ^^
기획업무를 사업자의 역할로 보면 PM의 역할을 사업부에서 담당하는건 잘못된게 아닐까요?
중간에 프로그램 관리자를 둬서 사업부의 요구사항을 프로그램 명세서로 바꿔주는 중간 직책이 필요할거 같군요.
그리고 결국 수많은 일은 하는 사업부에서 기획업무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발자의 일정 수립이나 상세기획에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건 아닐지 생각됩니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획자(planner)
서비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는 비지니스를 이해하는 개발자(developer)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Hybrid Theory…ㅋㅋ
그렇긴하죠. 비지니스 마인드가 부족한 개발자는 같이 일하기 피곤할거 같네요.
WEB2.0 같은 경우도, 기술적인 베이스와 함께 사회학 지식을 겸비하고 있어야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읽었습니다
퍼가려고 하는데 괜챦겠지요
않되면 않하겠습니다
예전 글이지만 유용하다면 퍼가셔도 됩니다. 제 블로그에 CCL이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네요. ^^
그리고 답글에 더 좋은 의견이 정리되 있으니 같이 공유되면 좋겠네요.
개발자의 고민이 전해지는 글이네요
개발자로서 기획자의 역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개발자들이 .기획자의 역활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라는 글을 종종 포스팅 하지만 기획자들의 글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기획자들의 의견도 듣고 싶군요.
단. 논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웹기획자들 중 일부는 웹시스템에 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여,
추상적인 내용을 지시하거나 개발자들이 보기에 필요없는 내용을 추가하도록 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웹기획자들은 자사, 경쟁사, 채널 등 다양한 분석을 거쳐 “전략”을 도출해내고,
회사에는 최대의 수익을, 사용자에게는 최대의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만, 그 전략을 구현하는 전술적인 부분에 있어 결과물로 낼 때, 앞에서 말한 개발적 지식이 부족하다보니(물론, 개발적 지식조차 풍부한 프로-기획자들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보아온, 익숙한, 창의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피티로 만들어 개발자에게 전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최선은 웹기획자들이 개발적 지식을 쌓아 창의적 전술로 개발자들의 개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겠지만, 또한 혁신적인 기획을 해내는 것이겠지만, 현재 시스템을 고려한 “새로운” 웹기획을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기획자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기획자는 카피라이팅부터 시작해서 PM PL 디자인실제구현기본지식 개발실제구현기본지식 프로젝트별해당분야비지니스지식 트렌드체크 랜퍼런스체크 벤치마킹 타겟팅 고객분석 고객관계관리분석 ROI전략수립 스텝매니징 팀웍조율 일정조율관리 내부커뮤니케이션 외부커뮤니케이션 상급자보고 회의주제 토론주제 PT발표 PT문서작성 과 같은 다양한 부분의 노하우가 필요한게 사실입니다. 단순히 관심있는 학생이나 일반 기업의 기획부서 기획자에서 웹기획자로 가는 것보단 실무자에서 기획자로 가는 것이 더 좋기야 하겠지만 기본 적으로 알아야 할 세부 지식이 너무 광범위 하여 진짜 프로기획자(?)로 모두에게 인정받을만 하려면 필드경력 10년 가지고도 모자른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뭔가 제대로 익히고 배우기 전에 결과부터 뽑아내야하는 압박부터 떠밀리듯 받아야 하는게 한국의 현실이다 보니 경험이 충분하고 지식도 폭 넓게 가지고 있는 진짜 기획자는 시장에 해당 인재가 거의 존재하기 힘들고 구인광고 띄워서 구해지는 2~3년차 혹은 1~2년차 기획자에게 로직도 모르고 디자인 이슈도 모르고 인터렉션이나 IA분석도 어렵고 데이터분석기간 같은 것도 거의 주어지지 않은채 다음달에 바로 개발 디자인 인력 투입시켜 만들기 시작할 프로젝트의 스토리보드와 일정관리부터 맡겨버리곤 하죠. 문제는 출발점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먼저 10년차 기획자 20년차 30년차 계속 잘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한. 웹기획자 5년차 넘긴 사람 구경하기 힘든 현상은 계속 될 것이고 그러면 모든 동료들이 만족스러워 해 할 만큼 모든게 완벽한 기획자를 만나기란 영영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성장 시간을 준 적이 없습니다.
매우 공강가는 글입니다. 이런 부분을 조금 더 정리를 해서 책으로 내거나, 적어도 웹 기획자들이 한번 쯤 봐야 하는 레퍼런스로 만들면 어떨 까 싶습니다. 비단, 개발자 / 디자이너 뿐 아니라, 실제로 기획자들도 이 글에 많은 공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무분별한 영업경쟁과 기간 단축 압박으로 인해 날림 공사가 이루어 지고, 전반적으로 웹 관련자들의 임금이 저평가 되는 것이 현실인데요, 결국은 교육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웹 개발 생태계를 바로 잡아야 앞으로 개인과 국가의 인터넷 비즈니스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쥔장님 글에 포함되는 최악의 기획자 명함파고 다니는 많은 기획자를 봤습니다. 기술이고 나발이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부터 좀 기르는 학원이나 먼저 다녔으면 하는 바램 큽니다.
‘웹기획자의 시초’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비춰 말씀 드리겠습니다.
최초 기획자는 ‘사업을 하는 사람 혹은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인터넷 환경이 되면서 ‘인터넷 사업’이 범주였고, 인터넷이란 주로 WEB 을 말했지요.
제 경험을 비추면 10여년전에는 WEB 을 만드는 일은 개발자 몫이고, 디자이너가 서포트 하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디버깅’ 부분에서 모든 사람이 참여하게 되면서 애매한 일이 발생됩니다. 기능적인 버그를 잡는 것을 넘어 서비스 흐름이나 디자인 그리고 갖가지 정책들에 대해 기획자 (사업하는 사람) 가 불만이 커지게 되죠. 처음에는 말로 고쳐달라고 하지만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문서화를 하게 되고, 리뉴얼을 할 때는 좀 더 구체적인 문서화, 결국 나중에는 아예 모든 페이지를 그려야 하는 것으로 점점 바뀌더군요.
이 글과 덧글을 보면 기획자에 대해 불만들이 있는데요. 저는 웹기획자를 없애버리고 엔지니어가 사업기획만을 숙지하여 프로그램을 만드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기획자로 부터 ‘웹기획’이라는 이상한 업무를 뺏고 그들을 시장환경분석이나 새로운 사업기획 영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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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JOB 의 화석화는 여전히 가열차게 진행중이다. 기획자와 기획자 캐리어패스의 정점이라 일컷는 프로젝트매니저, 영업직의 방치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그들은 여전히 음지에 일하며 자존감을 잃어 버리고 프리라이딩에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나라에 인포메이션 아키텍쳐가 있어요?” 라는 말을 들어도 오기며 모티브도 느끼지 못하는 광범위한 포용이 기획자라는 독립된 JOB 을 무용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에는 웹기획자가 없다. [...]